조선시대에는 유교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성인군자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남성은 서당에서 한자를 익히는 것을 시작으로 유교 경전을 외우고 해석하는 공부를 하였으며, 학습은 향교나 서원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기르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여성은 가정에서 현모양처가 되도록 교육을 받으며,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 자녀를 훌륭히 길러내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바랐다.
슬하분감膝下分甘.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를, 분감分甘은 ‘사랑을 베풀다’를 뜻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의 무릎 아래서 자라는 것처럼 자녀와 한 울타리 안에서 지낸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그 역할과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마음만은 다르지 않다.
余在耽津謫中, 病妻寄敝裙五幅, 蓋其嫁時之纁袡。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戒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挹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名之曰霞帔帖, 是乃紅裙之轉讔也。
내가 탐진(耽津)에 유배 중인데,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쳤다. 시집올 때 입었던 훈염(纁袡, 결혼예복)이다. 홍색은 바래고
황색도 옅어져서, 서첩으로 만들기에 꼭 맞다. 이에 재단하여
작은 첩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붓 가는 대로 써서 두 아들에게
물려준다. 앞날에 이 글을 보고 감회가 일어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을 접하면, 무럭무럭 감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름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한 것은 ‘붉은 치마’라는 말을 숨기고
바꾼 것이다.
『정약용 필첩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 중에서
정약용(丁若鏞, 1762-1836)
1813
고려대학교박물관
정약용이 유배 시절에 부인 홍씨의 치마를 잘라 아들들에게 『하피첩(霞帔帖)』을 만든 뒤 남은 비단 천 위에 매화와 새 두 마리를 그려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다. 그림 아래에는 딸 부부의 다산과 화목을 기원하는 내용을 적었다.
翩翩飛鳥, 훨훨 새 한 마리 날아와
息我庭梅。우리 뜰 매화나무에서 쉬네.
有烈其芳, 그윽한 그 매화향기에 끌려
惠然其來。반갑게 찾아왔네.
爰止爰棲, 이곳에 머물고 둥지 틀어
樂爾家室。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어라.
華之旣榮, 꽃이 이미 활짝 피었으니
有賁其實 토실한 열매가 맺겠네
嘉慶十八年癸酉七月十四日 洌水翁書于茶山東菴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 裙六幅 歲久爲四帖
以有二子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가경 18년 계유 7월 14일, 열수의 늙은이는 다산의 동암에서 쓴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 산 지 여러해가 지났다. 홍씨 부인이 여섯 폭짜리 낡은 치마를 부쳐왔다.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바랬기에 이를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게 준다.
귀하게 기른 딸을 시집보내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축복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귀한 딸 나가신다
청량한 울음소리 온 동네를 울리는 듯
두눈을 번쩍뜨니 환하게 비추는 듯
어와 이아기야 복덩어리 되오리라
-「귀녀가라」 중에서-
이항복(李恒福, 1556-1618)
1607
국립중앙박물관
이항복이 52세 때인 1607년 여섯 살 손자 시중(時中, 1602~1657)에게 해서楷書로 한 자씩 공을 들여 써 준천자문으로 붓으로 직접 쓴 천자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루어 이 노인을 실망시키지 말거라.”는 당부의 말에서 손자를 향한 애정이 묻어난다.
아이가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고 나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단계로 접어든다. 전통 시대 남자아이는 서당이나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 글공부를 시작했으며, 유교 경전 교육과 더불어 한 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면서 겪게 되는 생활 의례, 관혼상제에 대한 교육이 함께 이루어졌다. 오늘날 학교에서 교과목 학습과 생활지도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유교 경전 속에서 ‘의義’를 배우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조선
한문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한 교과서이자 글씨 쓰는 법을 배워 익히기 위한 책이다. 천자문은 천, 지, 인과 관련된 고사를 중심으로 한 내용을 사자성구 四字成句로 구성하여 송독학습 誦讀學習이 가능하도록 한 교재이다. 사자성구에 대한 독해보다는 한자를 많이 익혀 다른 한문 교재를 쉽게 읽도록 한 초급 문자 교육 교재로 사용하였다.
박세무(朴世茂, 1487-1564)
조선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선 중기 학자 박세무가 중종 38년(1543)에 저술한 아동교육 교재이다. 주로 『천자문 千字文』을 익히고 난 후 학습하도록 하였다. 내용은 유학의 핵심 윤리인 오륜 五倫과 역사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총론에서는 오륜은 하늘이 안간에게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품성이라는 사실과 함께, 오륜의 근원은 효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이(李珥, 1536-1584)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율곡 이이가 선조 10년(1577)에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편찬한 초등과정의 교재이다. 저자 서문과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문에 뜻을 두는 것에서 시작하여 스스로를 바로 세워 세상에 나가 활동하도록 한 성리학의 근본이념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였다. 단순한 아동교육서를 넘어 율곡 이이가 속한 사림파의 이념을 사회 저변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추적(秋適, 1284-1371)
1916
고려시대 문신 추적이 중국 고전에 나오는 선현들의 금언 金言과 명구 名句를 모아 놓은 책으로 『동몽선습』과 함께 조선시대 아동의 교육을 위한 기본 교재로 사용되었다. 제목의 뜻은 ‘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거울’로 착하고 바르고 지혜로운 마음을 심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유자징(劉子澄, 1134-1190)
조선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제자 유자징에게 편찬하도록 한 수양서로,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한 책이다. 유교사회의 도덕규범 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가려 뽑은 것으로 일상생활의 예의범벌,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유학 교육의 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소학』의 첫 부분인 「입교 立敎」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이 정성으로 태교를 하였기 때문에 문왕이 성군이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아동들에게 태임의 이야기를 알려주어, 학문의 시작이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엄격했다. 여자아이는 한 집안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기대받으며 안방에서 가사일을 배웠다. 집안에서는 한글 교육을 통해 문자 생활을 익히며,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배웠다.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 仁粹大妃, 1437-1504)
1736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성종의 어머니이자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 한씨가 여성들을 위해 지은 책이다. 여성이 말과 행동에서 주의해야 할 점, 친가와 시가의 부모님을 모시는 법,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아내의 도리 등 현모양처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제5 모의장에서는 딸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일곱 살이 되면 남자와 여자는 한 자리에 앉거나 밥을 함께 먹지 않도록 하고, 여자아이가 열 살이 되면 삼과 모시로 베를 짜고 실과 누에를 길러 실을 뽑아 비단과 명주를 짜는 여자의 일을 배워 옷을 짓도록 가르치라고 한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조선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우암 송시열이 결혼하는 큰 딸을 위해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적은 교훈서이다. 부모 섬기는 도리, 지아비 섬기는 도리, 시부모 섬기는 도리, 자식 가르치는 도리 등 유교 윤리 하의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자세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남성들이 『소학』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듯이 딸이 이 책을 보며 부녀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마음에 새기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삼남
200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