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을 바르게 길러내는 과정을 ‘양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양육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우리는 예로부터 양육이 ‘태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태아가 좋은 것만 배워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산부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등 태교에 힘썼다.
이렇게 뱃속에서부터 보살핌을 받아 세상에 나온 아이는 사회 속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예로부터 태아를 생명체로 여겨 태교를 중요시하였다. 태아와 임신부를 동일시하여 엄마가 먹고 마시는 것, 보고 듣는 것이 모두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말도 가려서 해야 했다. 오늘날 임신부들도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며 태교를 한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성장하며 가족의 일원이 되어 간다.
이이(李珥, 1536~1584)
1575
국립중앙도서관
율곡 이이가 사서(四書, 대학·중용·맹자·논어)와 육경(六經,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악경)의 방대한 내용 중 핵심을 뽑아 엮은 책이다. 유교 사회에서 자식을 바르게 기르는 부모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이는 ‘교자(敎子, 아이를 가르친다)’ 장에서 태교를 먼저 언급하고 있다. 부녀자가 임신하였을 때 잠자는 것, 앉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모두 바르게 하면 태어나는 아기의 용모가 단정하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 1739~1821)
1938
국립중앙도서관
1800년경 조선 정조대에 사주당(師朱堂) 이씨가 한문으로 짓고, 아들 유희(柳僖)가 뜻과 언해를 붙인 태교에 관한 책이다. 어진 스승의 십 년 가르침이 어머니 열 달의 가르침만 같지 못하다고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태교를 강조하는 만큼 아버지도 함께 태교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의 몸가짐, 마음가짐, 건강관리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
전통 시대에는 대문에 금줄을 쳐 집안에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렸다. 금줄을 본 사람들은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해 함부로 드나들지 않았는데,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자 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 출산은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진다. 퇴원 후에는 산후조리원으로 가거나, 집으로 가서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는다. 태어난 아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의학적 조치가 이루어지고, 영양 상태도 좋아져 아이들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한다.
권기남
2011
임신 기간 동안 병원 진료를 받은 내용들이 기록된 수첩이다. 산모의 개인정보, 병원 진찰을 받아야 하는 경우, 정기 검사와 특수 검사, 아기의 진찰 소견 등 임신과 출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진찰 소견 부분에는 산모의 체중과 혈압, 임신주수, 태아에 관련된 사항, 다음 진찰 날짜가 언제인지 기록되어 있다.
권기남
2011
태아때부터 돌까지 아기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일기장이다. 아기의 태몽은 무엇인지, 월령별 특이 사항은 어떤 것인지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던 날부터 50일까지 기록된 페이지로, 정성껏 보살핀 아기이지만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오게 되자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백일과 돌을 기념하여 잔치를 열어 축하했다. 아이의 육체적 성장이 활발해지고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 때가 돌 무렵이기 때문에, 잔치를 열어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였다. 또한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를 공개적으로 소개하여 사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렸다. 오늘날에는 백일과 돌을 간소하게 치르기도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기념하고 있다.
전통 시대에는 돌상 위에 붓, 책, 먹, 활, 명주실, 돈, 쌀, 자, 가위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두고 아이가 무엇을 잡는지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돌잡이를 했다. 또한 잡귀를 몰아내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수팥떡을 올렸다. 오늘날에는 기념사진을 찍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간략하게 치르기도 한다. 반면 아이가 한 명인 집이 많아 공간을 빌려 가족·친지들을 초대해 기념행사를 하기도 하는 등 형태가 매우 다양화되었다. 오늘날에도 돌잡이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데, 청진기, 축구공, 법봉(판사봉) 등 오늘날의 직업과 관련된 새로운 물건들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