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어야 했던 그들에게 ‘배움’이란 이루지 못한 꿈이자 열망이었다.
이러한 근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것은 산업체부설학교와 특별학급이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일하면서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수많은 근로 청소년들이 산업체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산업체부설학교와 특별학급은 근로 청소년들에게 일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나, 회사 생활을 할 경우에만 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섬유산업에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근로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1977년 2월 28일 대통령령 제8462호로 ‘산업체의 근로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특별학급 등의 설치 기준령’이 공포되었고, 야간 특별학급과 산업체부설학교의 설치가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산업체 부근에 있는 기존 학교에 야간 특별학급을 만들어 근로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게 하고, 1,000명 이상의 상용 노동자를 가진 사업장에서는 산업체 자체에서 부설 학교를 설립하여 근로 청소년들을 교육하도록 한 것이다.
1981년
한일합섬섬유공업주식회사
| 학교 수 | 학급 수 | 학생 수 | 산업체 수 | 졸업생 수 | |
|---|---|---|---|---|---|
| 중학교 | 13 | 71 | 3,490 | 13 | 387 |
| 고등학교 | 10 | 150 | 8,451 | 10 | - |
| 학교 수 | 학급 수 | 학생 수 | 산업체 수 | 졸업생 수 | |
|---|---|---|---|---|---|
| 중학교 | 19 | 125 | 5,721 | 16 | 1,069 |
| 고등학교 | 23 | 396 | 21,319 | 18 | 3,669 |
| 학교 수 | 학급 수 | 학생 수 | 산업체 수 | 졸업생 수 | |
|---|---|---|---|---|---|
| 중학교 | 13 | 46 | 2,388 | 13 | 852 |
| 고등학교 | 31 | 564 | 32,718 | 31 | 7,817 |
| 학교 수 | 학급 수 | 학생 수 | 산업체 수 | 졸업생 수 | |
|---|---|---|---|---|---|
| 중학교 | 3 | 7 | 275 | 8 | 118 |
| 고등학교 | 40 | 864 | 47,585 | 53 | 14,644 |
| 학교 수 | 학급 수 | 학생 수 | 산업체 수 | 졸업생 수 | |
|---|---|---|---|---|---|
| 중학교 | 1 | 1 | 12 | 1 | 9 |
| 고등학교 | 19 | 184 | 8,051 | 22 | 2,811 |
한국정책방송원
1991년
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

찌는 듯한 여름날 수업은 근무 후의 피곤함을 몰고 와 교실에 모아두면
잠이라는 친구는 우릴 가만히 앉혀 놓질 않았다.
그때마다 내 팔을 꼬집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우린 처지가 다르다. 그들보다 더 빠르게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레바퀴처럼 하루하루 변함없이 돌아가는 나날을
한탄해 볼 시간적인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 박병옥 ≪장미≫ 제3권 2호 제일모직 사보, 1982
산업체부설학교는 교대 근무조에 따라 오전과 오후에 수업을 각각 개설하였고, 부설학급은 낮에는 산업체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학교에 등교하여 수업을 듣도록 하였다.
학급당 학생수는 평균 55명으로 당시 일반계의 학생 정원이 50명인데 비하여 많은 편이었다. 설립 형태로는 공립이 25.9%, 사립이 69.2%였고 주간이 21.7%, 야간이 78.3%였다.
수업시수는 1일 4시간으로 일반 고등학교보다 2시간 정도 적었고, 전체 교육과정 중 2/3는 학교에서 이수하고 1/3은 현장 실무로 대체하여 일하는 시간이 수업시수에 포함되었다. 이렇듯 학습시간이 적다 보니 교육과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학생들은 긴 노동으로 피곤하여 학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산업체부설학교와 특별학급에서는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수학여행은 물론이고 각종 전시회, 교내 체육대회, 백일장, 합창대회, 시화전과 같은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졌다. 특별활동은 주로 토요일에 이루어졌는데, 학생회, 봉사활동, 독서회, 서예, 꽃꽂이와 같은 활동 등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대구에서는 제일모직 내에 성일여자실업학교가 1977년 11월에 설립인가를 받고 1978년에 개교하였다.
이후 1980년 대구한일실업고등학교, 1984년 이현여자실업고등학교, 1988년 자산여자상업고등학교가 차례로 개교하면서 총 4개의 산업체부설학교가 설립·운영되었다.


| 대구지역 산업체부설학교 | 개설(설립인가 ~ 폐교) | |
|---|---|---|
| 제일모직 | 성일여자실업고등학교 | 1977.11.23. ~ 1996.03.10. |
| 한일합섬 |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 1980.01.24. ~ 1995.03.10. |
| 갑을방적 | 이현여자실업고등학교 | 1984.02.14. ~ 1999.03.15. |
| 자산여자실업고등학교 | 1987.12.07. ~ 1995.02.28. | |
| 대구지역 산업체특별학급(경산 포함) | 개설(설립인가 ~ 폐교) |
|---|---|
| 경상여자상업고등학교(제일교등학교) | 1977~1993 |
| 경명여자중학교 | 1979~1995 |
| 협성중학교 | 1979~1980 |
| 대구공업고등학교 | 1979~1993 |
| 상서여자상업고등학교 | 1979~1993 |
| 경희여자상업고등학교(경상여자고등학교) | 1979~1989 |
| 구남여자상업고등학교(보건고등학교) | 1980~1993 |
| 경일여자상업고등학교(대구관광고등학교) | 1982~1993 |
|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 1982~1982 |
| 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제일중학교) | 1987~2002 |
| 신라여자종합고등학교(동부고등학교) | 1988~1993 |
| 진량고등학교 | 1986~2007 |
| 현풍여자고등학교 | 1985~2000 |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지고 온 경제적 여유로 국민들의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은 점점 더 높아졌다. 반면 산업체부설학교에서의 수업은 일과 병행하여 이루어지다 보니 그 수준이 부실하였고, 교육적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공장의 자동화 등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이 하향세를 걷게 되었고, 많은 섬유 산업체들이 1990년대 이후 중국, 동남아로 공장을 이동하면서 근로 청소년들의 유입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한편 정부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보편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확충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취업반을 설치·운영토록 하였으며, 장학금 지급의 폭을 넓혔다. 10대 여성의 교육수준은 전반적으로 상승하여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근로 청소년들의 배움터로 각광받던 산업체부설학교는 폐교되거나 일반학교로 전환되었다. 대구에서는 1995년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와 자산여자실업고등학교의 폐교를 시작으로 1996년 성일여자실업학교, 1999년에는 이현여자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