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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타고 온 사람들

함께하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은 선진국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미 어두운 미래를 극복하는 방안 중의 하나로 ‘다문화사회’를 선택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현상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통해 다문화사회를 키워 나가면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지요.

물론 현실에서는 다름과 낯섦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문화와 정서의 차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에서 생긴 오해들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들입니다.
이때, 갈등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포용과 공존의 가치

우리나라 역시 급속하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다각적인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997년 국정법 개정을 시작으로 교육, 생활, 고용, 의료와 관련된 많은 다문화 지원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책들은 대부분 다문화 가족들의 고용과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이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여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아닐까요?

여기,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오디에스는 시람 간의 어울림, 계층 간의 어울림,
국가 간의 어울림, 다양한 문화 간의 어울림.
어울림을 통한 성장을 지원합니다.

차별 없는 친구들, 저스트 프렌즈를 소개합니다.
다문화사회를 넘어 세계화의 가운데서 인종과 국가, 지역이 가진 편견 따위는 없는 그냥 친구들.
7개의 대륙을 상징하는 동물 캐릭터, 각 대륙이 가진 기질과 상징동물을 매칭한 것이 포인트입니다!

동화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을 소개합니다.

스리티 움리가 글 ‖ 코아 르 그림 ‖ 신동경 역 ‖ 웅진주니어 출판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은 낯선 나라로 이주해 불안해하는 소녀에게 이모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입니다.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된 페르시아 사람들의 이야기는 갈등을 극복하는 길을 보여 줍니다. 한 잔 가득 찬 우유에 설탕 한 스푼을 넣고 조심스레 저으면 달콤한 우유가 될 뿐 넘치지 않듯, 한 세계에 진입하는 낯선 이를 끌어안을 때, 또 끌어안길 때, 더 달콤한 세상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

    비가 갠 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면 사람들은 미소 짓습니다.
    다양한 빛깔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개성과 능력으로 여기고,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며,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사회.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분명 무지개처럼 아름답지 않을까요?

전시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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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03

가로 60㎝ 세로 3㎝

길이, 너비, 두께 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도구.

줄자

지름 12㎝

띠로 된 줄자. 길이, 너비, 두께 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종이줄자

가로 100㎝ 세로 2㎝

종이재질의 줄자. 길이, 너비, 두께 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인치(inch)와 센티미 터(cm)가 표시되어 있다.

목화저울

길이 12~61㎝

목화솜의 무게를 재던 저울.

약저울 藥衡

가로 39.5㎝ 세로 20㎝

약재의 정확한 양을 재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로 약방저울이라고도 한다. 한 쪽에 약재를 올리고 다른 한 쪽에 추를 올린 후 수평을 만들어 약재의 무게를 측정한다. 약저울은 대체로 크기가 작고 정밀하며 고급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이 약저울은 상아로 만들었다.

옛저울

가로 39.5㎝ 세로 20㎝

약재의 정확한 양을 재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로 약방저울이라고도 한다. 한 쪽에 약재를 올리고 다른 한 쪽에 추를 올린 후 수평을 만들어 약재의 무게를 측정한다. 약저울은 대체로 크기가 작고 정밀하며 고급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이 약저울은 상아로 만들었다.

주판 籌板

가로 33㎝ 세로 11㎝ 두께 3㎝

계산할 때 사용하던 도구. 나무로 만들어진 주판이다. 총 21줄로, 윗줄은 1개, 아랫줄은 4 개의 주판알을 끼웠다. 주판알을 둥글게 다듬은 것이 특징이다.

지름 32㎝ 높이 33㎝

곡식이나 가루, 액체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이자 그릇. 둥근 형태이고, 나무로 만들어 졌다. 1말은 10되로, 약 18L이다.

가로 17㎝ 세로 17㎝ 높이 10㎝

곡식이나 가루, 액체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이자 그릇. 정방형의 형태로 나무로 만들어 졌다. 1되는 0.1말로, 약 1.8L이다.

산가지

지름 6.5㎝ 높이 10㎝

대나무 등으로 만든 막대를 일정한 방법으로 늘어놓아 숫자를 계산하는데 사용하는 도구. 산통과 산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산통은 팔각형이고, 산가지는 가늘고 긴 막대기 형태이다.

돈통

가로 23.5㎝ 세로 31㎝ 높이 21㎝

돈을 넣어 보관하던 통.

黑笠

지름 37㎝ 높이 14㎝

조선시대 성인 남성이 쓰던 모자. 주로 말총, 대나무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머리에 쓰는 모자와 차양인 양태로 구성되어 있다.

백립 白笠

지름 30㎝ 높이 14㎝

대나무로 틀을 잡고 흰 천을 덧대어 만든 갓. 주로 상복과 함께 착용하였다.

탕건宕巾

지름 15㎝ 높이 15㎝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은 형태로, 망건 위에 썼다. 말총을 엮어 만들었다.

망건

길이 12~61㎝

목화솜의 무게를 재던 저울.

흑혜 黑鞋

길이 24㎝

검정색 가죽으로 만든 신. 운두가 낮고 신코가 넓적하며 가장자리에 흰색 선을 둘렀다. 모 양이 태사혜(사대부나 양반계급의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시에 신던 신)와 같으나 태사문(신발의 코와 뒤축부분에 새겨 넣은 흰 줄무늬)이 없다.

비녀

길이 13.5회

혼인한 여성의 쪽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신구. 금, 은, 옥, 칠보, 비취 등 신분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가위

수염을 손질할 때 사용하는 빗과 가위이다.

뒤꽂이, 빗

길이 10외

빗치개

길이 12외

가르마를 타거나 머리에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는 도구. 몸통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동곳 銅製簪

길이 5.7외

상투를 고정하기 위해 정수리에 꽂는 기혼 남성의 장신구이다.

유기 鍮器

놋쇠로 만든 그릇으로 놋쇠는 구리에다 주석, 아연, 니켈을 섞은 합금이다. 유기의 종류는 크게 식기, 혼사용구, 제사용구, 불기류, 난방용구, 등잔류 등이 있다.

시장 환경 개선

예로부터 내려온 대구시장 자리는 전혀 손보지를 않아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는 까닭에 경 북도청에서 시장 주위에 하수구를 파고 토관을 묻는 배수공사를 7월 초에 완공하기로 하고 근처 우시장 수선공사는 농번기라 중단하였다는 소식이다.

<매일신보 1912. 6. 7.>

서문시장 이전

1922년부터 공사에 들어간 서문시장 이전 설비가 곧 완성 돼 신설시장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보 1923. 3. 30.>

서문시장 이전 축하 잔치

1923년 4월 1일부터 신축시장으로 이전하고, 시장 상인들이 이 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4월 8~9일 양일간 기생들의 연주와 춤 등 여흥을 펼쳤는데,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와서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보 1923. 4. 13.>

서문시장 화재

서문시장 북로에 큰 불 6월 21일 오후 3시 반 시장북로에 있는 농기구상에서 발생한 불이 때마침 불어온 강한 동풍과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달성공원 쪽까지 번져 1시간 만 에 진화되었지만 전소 48호, 반소 13호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손해액은 약 5만 8400원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다.

<부산일보 1927. 6. 22.~6. 23.>

콜레라로 인한 시장 휴점

1916년 가을 대구에 콜레라가 발생해 서문시장과 동문시장이 휴업 에 들어가며 전반적인 소비가 하락함과 동시에 극성을 부리던 콜레라도 어느 정도 잦아들고 있지만 시장 휴업 여파는 심각해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졌다는 내용이다.

<부산일보 1916. 10. 21.>

폭설로 점포 무너져

1923년 1월 대구에 무려 60센티가 넘는 폭설이 쏟아져 교통이 두절되고 우편과 신문 배달 마저 중단된 가운데 시내 관공서는 업무를 전폐하고 모두 제설작업에 열심인데 이 와중에 서문시 장 에서는 몇몇 점포가 무너져 손해가 컸다는 내용이다.

<매일신보 1923. 1. 18.>

시장통 전부 물바다

1924년 7월 21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호우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였는데, 특히 동산 남쪽과 성주가도 부근에서 흘러내린 물이 전부 서문시장과 근처 인가를 급습하여 시장통과 달성공원 일대까지 다 잠기고 그 참상이 심각하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 1924. 7. 25.>

대구부 시장 사용료 인하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인해 대구부에서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징수하던 시장 사용료를 인하 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38호 22명에게 갑호는 10월부 터 3월까지 3원, 11월부터 4월까지는 5원, 을호는 동일하게 2원 35전이었는 데, 이번에 갑호는 3원, 을호는 2원으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신문 1932. 10. 27.>

명신상회 과자틀

화장품

시간여행 소장

담배

시간여행 소장

양말, 내의

시간여행 소장

각종 원단

시간여행 소장

각종 원단

시간여행 소장

양복 원단지

시간여행 소장

달구대관

달구대관
가로 21㎝ 세로 29㎝
영남일보사 발행

웰컴 투 대구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3/11/17 16:4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