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시장에는 인간사 희노애락이 돌고 돕니다. 서문시장이 주는 감정이 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시장은 삶의 현장입니다. 그 곳에 가면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살아 꿈틀거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살아가는 힘과 희망을 건져 올립니다.
그렇다 보니 시장의 다양한 소재들은 문학작품, 그림, 영화, 연극 속에서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사람 냄새를 더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의자 몇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서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주리 삶은 돼지다리에선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나는 아버지가 시켜주신 비곗살 달콤한 돼지고기를 씹었지.
벌건 국물에 고기 띄운 국밥이 아닌, 살코기로 수북이 한 접시를
꺽꺽 목이 맥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단번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맥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냐 잘도 씹었지
뱃속에서도 퍼뜩 넘기라고 목구녕으로 손가락이 넘어 왔었지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공부하는 놈이라도 실컷 먹인다고
누이 형제들 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 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어라시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가 묵어라시며
스물여섯에 아버지 돌다가시던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돼지고기 한 접시 놓고 허겁지겁 먹어 대던 그날
난생 처름 아버지와의 그 비밀잔치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서문시장 지나기만 하면 그 때 그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돼지고기 한 접시 시켜 놓고 울고 싶어지지
빗물 질펀한 시장을 가로질러 노점에 닿는다
양은 솥 가득 수제비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게딱지 손으로
쉼 없이 수제비를 뜯어내는 그녀의 저 재빠른 손놀림,
겨울비 내렸고 생의 절반이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뚝 떨어져 나간 남편과 어린 자식 삼남매와
빚덩이만 밀가루 반죽처럼 게딱지 손끝에 매달려 있다
팔자라 말하기엔 아직 잘라버리지 못한 것들 손끝에서
댕강댕강 양은솥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 살아가는 삶, 밀가루 반죽은
‘뚝뚝’ 그녀을 잘라 먹는다 숨을 쉬는 동안
끝나지 않는 눈물을 밀랍하는 일 찜통에 담아두었던
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들고서
밀려 나온 생의 한 가운데 모든 신경을
손끝에 모아 쪼가리 쪼가리
양은솥 안으로 던져 넣는 수 천개의 게딱지
서문시장 큰 장 설 때
육곡간 건너 뻥튀기 뒷길 풀무질 바쁘던 대장간 지나
드럼통에 국방색 잠바 까맣게 물들이던 금수세탁소 돌아
열 뼘가웃 외할머니 점방에 들면
구제군복 미제 깡통 유리병 서껀 헌 워커 팔아
1원짜리 붉은 종이돈 하나 꼭 쥐어주곤 했었다
찐빵 살까 떡볶이 먹을까 국자에 설탕 녹인 폿또를 할까
주전부리에 정신줄 놓고는
쫀드기 말표사이다 평양순대 곤달걀에
내가 흘린 침과, 뿌옇게 큼큼 국물 냄새를 피우던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좋은 고래고기 날 놀려먹던
상고머리 땜통머리 도장밥 버짐 기계총 비루먹은
코찔찔이 동무들 다 어디 갔을까
그 보랏빛 향기와 풋것들,
차마 낯가림처럼 아련한 추억의 속살
어느 치맛말기에 꼭꼭 숨은 것이랴
이준일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시장을 즐겨 찾았습니다.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느낌이 좋아 전국을 누비며 스케치를 하곤 했습니다. ‘서문시장 풍경’은 더위가 한창이던 때, 작가가 직접 서문시장을 찾아 현장에서 직접 드로잉한 작품입니다. 다소 투박한 느낌을 통해 번작한 시장 이미지와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989년 발표된 배용균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한국 최초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영화속에서 ‘서문시장’은 ‘사바세계’를 상징하는 삶의 공간입니다.
‘사바세계’란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하는 현실을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노승 혜곡스님의 약값 마련을 위해 주인공 기봉스님이 탁발하는 현장으로
‘서문시장’이 4분가량 등장하여, 세계인을 만났습니다.
영화포스터
아무리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현대인에게 익숙하다고 해도 전통시장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주는 매력은 참 다채롭습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지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해온 서문시장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대구의 대표시장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꼭 사거나 팔 물건이 없어도 구경삼아 시장에 갑니다. 서문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사람 냄새’가, 그리고 그 안에서의 ‘정’이 가득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서문시장에서는 빈 장바구니로도 마음이 배부릅니다.
일러스트(서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