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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 새로운 도시의 탄생

대구, 경상의 중심이 되다

대구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한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가장 작은 단위의 행정구역인 현에 해당했던 대구는 대구현*에 수성현*과 해안현*,하빈현*을 통합하여 1419년(세종 1)에 대구군大丘郡으로 승격되었고, 1466년(세조 12)에는 다시 도호부都護府로 차례로 승격된다.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조선은 불과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네 차례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사회 전반이 재정비·확장되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구도 이 시기 경상감영의 설치와 함께 도시로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대구현
중구, 서구, 달서구 성서, 금호강을 경계로 한 북구
✽수성현
수성구 대부분과 남구 일대
✽해안현
동구 동촌, 공산
✽하빈현
달성군 하빈면, 다사읍 일대

읍성 이전의 대구

其地東南負大海, 西界智異山, 至减陰縣、六十峴,
北界竹嶺, 至聞慶縣、草岾, 而大丘郡在道中央。

그 땅이 동남쪽에는 큰 바다가 있고, 서쪽은 지리산智異山을 경계로 하여
감음현減陰縣 육십현六十峴에 이르고, 북쪽은 죽령竹嶺을 경계로 하여
문경현聞慶縣 초점草岾에 이르는데, 대구군大丘郡이 도 중앙에 있다.

-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

세종대에 만들어진 지리지를 바탕으로 1454년(단종 2)에 완성된『세종실록지리지』는 전국 모든 고을에 대해 세세하게 조사하여 담아낸 지리지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경상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의 중앙에 대구군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가 이미 도시 성장에 필수적 요소인 입지立地적 장점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경상감영(慶尙監營) 지역의 행정중심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가 방어적 측면에서 높이 평가된 대구는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의 설치와 함께 조선의 새로운 행정 도시로 부상한다. 조선 전기의 지방 통치는 국경과 접하고 있다는 군사·지리적 특수성을 지닌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6도의 경우 관찰사가 관할 지역을 순력巡歷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 감영은 관찰사가 일시적으로 머무는 행영처行營處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조선 후기가 되면 관찰사가 한 지역에 머물며 업무를 수행하는 유영留營체제로 바뀌게 된다. 감영의 행정기구로서의 역할과 규모도 확대되게 되는데 감영은 감영 자체의 운영을 위한 재정 기반을 갖추어야 했음은 물론 국가 재정의 운영에도 역할을 해야 했다. 이러한 행정적 운영 외에도 외교적 기능을 수행하거나 지역의 교육·문화적 역할도 수행하였다.

✽순력
조선시대 관찰사가 도내 각 고을을 순찰하던 제도. 순행이라고도 함

경상감영

유리건판 사진으로 보는 경상감영

유리건판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근대적 방식의 촬영 매체이다. 일본은 1909년 부터 1945년 사이에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의 자연환경과 민속, 유적, 유물 등을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촬영하여 유리건판으로 제작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38,000여장에 이르는 유리건판은 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수하였다. 2007년부터 공개되고 있는 유리건판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유리건판 중에는 대구의 모습이 담긴 자료들도 확인된다. 소개하는 이미지는 경상감영의 모습을 담은 유리건판으로 원래는 흑백으로 남아있는 자료들이나 당시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컬러라이즈하였다.

  • 경상감영 운영 행정편람서
    영영사례 嶺營事例

    조선 1871년
    상주박물관 소장

    감영의 각종 규정과 현황, 행정사항을 기록한 책으로
    경상감영의 인원 구성, 직제 및 환곡, 군역 등의 조세와
    국방 관련 사항과 같은 감영 운영의 내용을
    구체적인 물명과 수치로 기록하고 있어
    조선 후기 지방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관찰사가 조정에 올린 업무 보고
    경상감영계록 慶尙監營啓錄

    조선 19세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842년(헌종 8)부터 1891년(고종 28) 사이에 경상감영에서
    조정에 보낸 계문啓文을 비변사에서 기록한 것이다.
    관리의 도임到任과 진상進上 관리, 조창선漕倉船
    외국인 선박과 미확인 선박의 왕래, 권농勸農
    기우제 설행設行, 유배죄인의 동태, 죄인들의 죄목 및
    추고내용推拷內容 등에 관한 보고가 많다.

경상감영계록 내지

  • 중앙에서 내린 업무 지시
    경상감영관첩 慶尙監營關牒

    조선 18세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785년(정조 9) 4월부터 1787년(정조 11) 5월까지
    비변사備邊司에서 경상감영에 보낸 39건의 관문을
    접수한 순으로 모은 것이다.
    환곡과 군액軍額 등에서 발생한 각종 폐해에 대한
    시정 지시 및 조운 시 난파된 배에 대한 처리 지시,
    왜관 개시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경상감영관첩 내지

  • 새롭게 편찬된 종합 법전
    대전통편 大典通編

    조선 1785년
    대구근대역사관 소장

    『경국대전』, 『속대전』과 같은 법전 외에도, 『오례의』 등
    법적 효력이 있는 전서들이 나뉘어져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이들 법전을 통합해 1785년(정조 9)에
    편찬한 새로운 법전이다. 당시 지방 관아로 보낼 것은
    각 감영에서 별도의 번각본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 책은 경상감영에서 발행하였다.

  • 왕이 백성에게 하고 싶은 말
    윤음 綸音

    조선 1782년
    대구근대역사관 소장

    윤음은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와 백성에게 내리는 말을 일컫는다.
    농사를 권장하는 내용이 가장 일반적이며 의례적인 것부터
    국가 위기 상황에서 특별히 내리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 윤음은 정조 6년 간행된 것으로 경상감영에서 발행하였다.

  • 전염병을 치료하는 방법
    두과휘편痘科彙編

    윤광안尹光顔
    조선 1807년
    대구근대역사관 소장

    경상도 관찰사 윤광안(1757-1815)이 중국 청나라의 적옥화翟玉華가 지은
    의학서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새로 간행한 것으로
    경상감영 발행본이다. 천연두나 홍역과 같은 발진성 전염병인
    두진痘疹의 치료와 처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상북도관찰부 공해도(公廨圖)

『각관찰도거래안各觀察道(去來)案』중
대한제국, 1907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상도는 1896년(고종 33)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분리되었고 경상감영이 위치했던 대구에는 경상북도관찰부가 설치된다. 경상북도관찰부 공해도는 1907년에 만들어진 『각관찰도거래안各觀察道(去來)案』에 수록된 자료로 당시 경상북도관찰부 관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관찰부 소속 40개 건물의 명칭과 선화당을 중심으로 한 관풍루, 징청각, 내영리청, 군뢰청, 사령청, 교군청, 연초당 등 경상감영 시절부터 이어지는 주요 시설의 위치와 배치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경무서, 공립소학교 등에서 당시의 시대 변화 모습을 함께 알 수 있다.

① 관풍루觀風樓 경상감영의 정문인 외삼문(포정문布政門)의 2층 누각.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나옴

② 선화당宣化堂 관찰사의 정무를 처리하던 감영의 본관건물. ‘승류선화承流宣化’에서 나옴

③ 징청각澄淸閣 ‘깨끗한 정치를 행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관찰사의 살림채

④ 연초당燕超堂 감사의 수석부관인 도사의 집무소

⑤ 백화당百和堂 관찰사나 절도사 등 지방관의 참모인 감영의 비장裨將들이 사용하던 건물

⑥ 전내영리청前內營吏廳 감사 순력 시 향도 내지 안내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영리들의 업무공간

⑦ 관노청官奴廳 지방관아의 노비들을 다스리는 관청. 관노들이 거처하는 공간

⑧ 사령청使令廳 관청 안에 사령들이 모여 있는 곳

⑨ 장교청將校廳 지방 관아의 군무軍務에 종사하던 하급 장교들의 관청

⑩ 군뢰청軍牢廳 죄수를 관리하던 군졸이 머무르면서 업무를 보던 곳

⑪ 압뢰청押牢廳 죄인을 맡아서 지키는 사람들이 있던 곳

⑫ 경무서警務所 조선 말에서 대한제국 시기까지 경찰 업무를 관장했던 관청

⑬ 종계소種繼所 천연두를 관리하는 곳으로 우두를 접종함.

⑭ 교군청轎軍廳 가마꾼(교군꾼)을 관리하던 곳

⑮ 교방敎坊 장악원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아울러 일컫는 말. 좌방은 아악雅樂, 우방은 속악俗樂을 담당함

⑯ 취고수청吹鼓手廳 악사양성소

⑰ 공립소학교公立小學校 1896년 9월 17일 학부령 5호에 의해 설립된 대구지역 최초의 근대 학교.

(통감부의 ‘보통학교령’에 의해 대구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기까지 10여 년간 존속.
대구공립보통학교는 1906년 9월 1일 설립, 임시로 공립소학교 건물을 사용하다가1907년 7월 22일 이전)

도의 관리자 관찰사(觀察使)

조선 조정에서는 전국 8도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관찰사를 파견하였다. 이들의 일차적 업무는 국가 재정을 뒷받침하는 조세와 공납의 원활한 운영 및 각 고을 수령에 대한 감찰과 통제 등 효율적인 중앙집권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각종 행정 사항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지역 내 민·형사 소송을 처리하는 사법적 업무는 물론 군사를 훈련하거나 향시鄕試를 주관하는 것 역시 관찰사의 일이었다. 경상도 관찰사는 지리적 관계상 일본과의 외교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들을 맞이하는 접위관接慰官의 역할도 수행하였으며, 대구(도호)부사를 겸하였기 때문에 대구 자체의 행정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지방행정장관으로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왕에 의한 중앙집권 국가의 실현을 목적으로 조정에서 임명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사항은 반드시 중앙과의 협의와 조정을 거친 후에야 결정되었다.

전시실 사진

ZONE 01

선화당宣化堂, 보물 제2152호.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정청政廳으로 도내 일반 행정, 군사, 조세 및 중요한 재판이 행해지던 곳이다.
선화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宣上德而化下民) 건물’임을 뜻한다.

징청각澄淸閣,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관찰사가 정무 외 생활을 했던 관사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세 번의 화재 후 1807년에 중건한 것이며,
1970년 다시 해체, 복원하였다.

내삼문內三門

감영의 주 건물인 선화당의 정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3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찰사가 드나들던
가운데 문을 양쪽 문보다 크게 만들었다.

외삼문外三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경상감영의 정문인 포정문布政門에 해당한다. 2층 누각으로 만들어졌으며, 관풍루라고 불렀다.
현재는 달성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경상도의 책임자가 되다
관찰사 임명 교지 敎旨

조선 1725년
경기도박물관 소장

교지는 문서 첫 행에 ‘교지敎旨’라고 표기된 문서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왕의 명령 및 의중을 담은 언사, 관직을 내리는 것 등이 있다.
이 교지는 조영복趙榮福(1686-1761)을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도호부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정에 올리는 진상품 목록
경상도 진상물목 慶尙道 進上物目

조선 189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상은 각 도에서 진귀한 물품이나 특산품을 조정에 올리는 것으로 세금인 공물貢物
해당한다. 따라서 진상품의 관리 역시 각 도 관찰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문서는 1895년 1월 15일에 경상도 관찰사가 종묘에 그 해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리기 위해 바치는 경상도의 2월분 진상품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문서의 끝부분에는 관찰사의 관인官印이 찍혀 있다.

관찰사의 인사 권한
차첩 差帖

조선 1850년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차첩은 녹봉이 정해지지 않은 무록직無祿織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한 임명장이다.
관찰사는 자신이 속한 도의 관사나 군대, 행정관리를
왕의 결재 없이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각 고을 수령들에 대한 인사평가
포폄단자 초 褒貶單子 草

조선
화성시역사박물관 소장

포폄은 관료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도에 소속된 군현 수령들에 대한
인사평가는 관찰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이 문서에는 경상도 각 고을 수령의 직함, 이름,
고과 내용, 평가 점수 등이 기재되어 있다.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2/11/02 13:0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