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첫날, 그 설렘을 기억합니다. 페인트 냄새 가득 배인 초록색 책상, 무릎 꿇고 초칠하던 교실바닥. 번개치기로 달달 외우던 긴장백배 시험시간, 투닥거리던 짝꿍까지 지금, 기억 저 너머의 학창시절이 하나하나 펼쳐집니다.
국민체조는 1977년 체육의 생활화를 기하고 국민체력을 향상시키며, 건전한 사회기풍을 조성함으로써 새마을운동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보급되었습니다.
총 12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반복을 통해 약 6분 정도 실시됩니다.
때로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때로는 긴장한 눈빛으로,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우리는 더 큰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특별활동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4년 문교부가 공포한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에서 입니다.
‘학생의 개성신장, 건전한 취미와 특수기능의 육성 및 민주적 생활 활동을 육성하기 위하여 학생회·봉사활동·운동경기·토론회·독서회·클럽활동 등을 통해서 행해지는 교육활동’으로 정의됩니다.
특별활동은 주로 교과목과 연계한 활동이 많았고, 이후 2009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 경험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50원짜리 ‘초코파이’, ‘새우깡’, ‘빠다코코넛 비스켓’, ‘오란씨’... 합판 아이스케키통 뚜껑을 열면 얼음을 넣은 주황색 고무주머니 아래로 ‘바밤바’, ‘누가바’, ‘부라보콘’같은 50원짜리 하드와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잔뜩 들어있던 학교 앞 그 문방구는 하교 길 아이들로 항상 북적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새벽부터 종을 울려 학생들을 깨웠습니다. 분단국가의 불안함은 학생들의 손에 플라스틱 총을 쥐어 주었습니다.
지식과 함께 강인한 체력으로 단련된 그 시절 학생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힘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주도로 도입된 체력장제도는 1971년부터 국민학교 5학년~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1972년에는 고교입시에, 1973년에는 대학입시에까지 적용됩니다.
남고생은 1969학년도부터, 여고생은 1970학년도 2학기부터 주 2시간씩 교련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남학생은 제식훈련, 총검술, 사격, 독도법 및 군법 등을 위주로 수업하였으며, 여학생은 위생 및 구급간호와 제식 훈련 등을 수업하였습니다. 교련은 교육부가 1993년 고교군사훈련을 폐지하면서 안전 교육 위주로 개편됩니다.
1972년 문교부는 전국의 학교를 새마을운동의 센터로 만든다는 ‘새마을교육 3개년 계획’을 입안하여 추진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물자 아껴 쓰기, 폐품 및 휴지 수집, 교통정리, 교내 특별 청소, 학우 돕기, 불우 이웃 돕기 같은 ‘봉사활동’이 강조되었습니다.
만국기 휘날리는 운동장, 청군, 백군의 열띤 응원 소리, 은행나무 아래 자리 잡은 어머니의 시선은 내 아이를 쫓아갑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릴레이 경기. 국가 대표 부럽지 않은 우리 학교 스타는 그날,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수건돌리기, 보물찾기, 김밥에 사이다 한 병. 머리맡에 소풍가방 싸두고, 잠자기 전 기도까지 1분 1초를 꽉꽉 채워 열과 성을 다해 놀던 그날만큼은 호랑이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