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면서 초등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1950년 1학기가 시작되는 6월 1일부터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실질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1954년부터 ‘의무교육 완성 6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1959년에는 초등학교 취학률 96.4%를 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생 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학교의 시설은 제대로 확충되지 못해 80명이 넘는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가하면 2부제, 3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도 생겨나게 됩니다.
1960년대~1970년대는 한국교육의 팽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무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1960년대에 대거 졸업하지만 진학할 수 있는 중학교의 수는 적었고, 결국 치열한 중학교입시경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무즙파동이나 창칼파동과 같은 오답시비가 나타나게 되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과도한 입시 공부에 몰아넣는 중학교 입시의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면서 문교부는 1968년 7월 15일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하는 ‘중학교무시험진학안’을 발표하였고 중학교 무시험 입학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 시기 중학교 진학률은 급격히 증가하여 1980년에는 중학교 진학률이 95.8%에 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의 문이 넓어지면서 고등학교 진학의 문은 더욱 좁아집니다.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사교육 열풍이 계속되자 1974년, 인문계 고등학교의 정원만큼 연합고사를 통해 선발한 다음 이들을 학군별로 나누어 학교에 배치하는 ‘고교평준화정책’이 실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