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생 8일 만인 1592년 4월 21일, 대구읍성은 파죽지세로 진격한 왜군에게 완전히 점령당합니다.
지역의 관군은 대구부사 윤현을 따라 동화사에 주둔한 이후 흐트러진 군세를 바로잡고 군사 활동을 전개해갑니다.
대구 지역 선비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도 관군과 합세하여 함께 항전했습니다. 승병장이었던 사명당 유정도 영남지역 승군사령부를 동화사에 두고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팔공산을 거점으로 한 관군과 의병의 항전은 대구 반대편 지역에서 활동했던 또 다른 의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100여명 남짓 되는 소수 병력의 의병대를 이끈 24살의 젊은 의병장 우배선은 비슬산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본에 항전합니다. 대구부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은 우배선 부대의 배후 기습 위협 때문에 관군과 의병의 거점이었던 팔공산 지역을 쉽게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서 분연히 일어난 이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다독이며 항쟁하였고, 또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위기를 대비하며 굳건히 나라를 지켰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산인 팔공산은 예로부터 호국의 기운이 서려있던 곳입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신라 오악五岳 중 하나였을 만큼 영산靈山으로 인식되었으며, 불교 수용 이후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세워졌습니다. 고려 1011년에는 거란의 침입에 맞서 불교의 가르침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는데, 그 판각과 보관이 부인사符仁寺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는 동안 차곡차곡 담겨진 사람들의 염원은 다양하고 풍부한 불교 문화재를 우리에게 선물해주었습니다.
보물 제1505호
대구 동화사 사명당 유정 진영
大邱 桐華寺 泗溟堂 惟政 眞影
<벽란도>의 시운詩韻을 빌려 짓다
1605, 일본 교토 고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