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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재 톺아보기

기록하다

대구읍성 이야기

대구읍성은 1590년(선조23년)에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처음 쌓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이내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영조 12년(1736년)에 경상감사 민응수가 대구성을 쌓을 것을 조정에 청하여 윤허를 얻어 새로이 성을 쌓았습니다.
성의 둘레는 총 2.6㎞ 정도였고, 동서남북 각각 ‘진동문’, ‘달서문’ ‘영남제일관’, ‘공북문’으로 불리는 4개의 큰 문과 ‘동소문’과 ‘서소문’이라 부르는 야간통행용 암문暗門 2개가 있었습니다.
대구읍성은 오랜 세월로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던 1870년, 축성 134년 만에 동서남북 성벽 위에 새로이 4개의 누각을 새우고 다시 한 번 크게 중수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06년에 당시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였던 친일파 박중양이 읍성에 대해 독단적으로 철거를 감행하면서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경상도읍지 대구부(1800~1834,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구전도(1906, 대구근대역사관 소장)

대구읍성 축성의 기록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영영축성비

      嶺營築城碑

    • 민응수, 백상휘│조선 1737년(영조13년)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지정일 1982. 3. 4.
    • 1736년에 중수한 대구읍성에 대한 공사과정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에 따르면 읍성 중수에 동원된 인원은 총 78,534명이고, 1월부터 시작된 공사에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존에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재건하였으며 완성된 읍성의 둘레는 2.68㎞, 높이는 대략 3.5~3.8m이었다. 원래는 남문이었던 영남제일관 밖에 새워졌으나 대구읍성이 사라지면서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가 1980년 현재의 망우당공원 자리에 옮겨졌다.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

      대구부수성비

      大邱府修城碑

    • 김세호, 최석로│조선 1870년(고종7년)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지정일 1982. 3. 4.
    • 1870년 대구읍성 중수 후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에 따르면 읍성 수리는 1870년 봄에 시작, 그해 11월에 끝마쳤으며 원래보다 높이와 크기를 키웠고, 정해루, 주승루, 선은루, 망경루의 4개의 누각을 새로 세웠다고 한다. 본래 읍성 남문인 영남제일관 밖에 있었으나 1906년 성이 헐리면서 1932년 대구향교로 옮겨졌고, 1980년 현재의 망우당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대구읍성 축성의 교훈

  • 실학 사상이 담긴 축성
  • 나라 경제를 생각한 축성
  • 백성의 살림을 배려한 축성

선정을 베푼 관찰사를 기리다

경상도 관찰사 민응수閔應洙(1684~1750)를 기리는 무휼승도비, 영세불망비

    • 무휼승도비

      撫恤僧徒碑

    • 조선 1737년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내
    • 민응수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고통 받는 승려를 딱히 여겨 관찰사 재임 중에 일체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이에 감동한 승려들이 1737년 4월 무휼승도비를 세웠다.
    • 영세불망비

      永世不忘碑

    • 조선 1740년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내
    • 관찰사 민응수가 대구를 떠난 3년 후인 1740년 10월, 대구읍성을 쌓으면서 백성에게 선정을 베푼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선정비인 영세불망비가 세워졌다.

치국治國을 위한 천문 읽기

유교사회에서의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이었습니다. 군주는 하늘의 뜻 즉, 천명을 받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천문학은 지구 대기권 너머 우주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현상을 모두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날씨라 부르는 기상현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현상을 읽어 시간과 날씨를 알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것, 이는 농경사회에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국가 재정의 확보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천문학이 제왕의 학문이 된 데는 단순히 명분을 넘어서 이러한 실리적인 측면도 담겨 있습니다.
조선은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표방하기 위해 개국 초부터 천문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경천근민을 지도자의 도리로 삼았기 때문에 천문을 읽는 것은 왕의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이에 정확한 천문관측을 위한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 다양한 천문 기구들을 제작했습니다.

  • 경천근민敬天勤民: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부지런히 힘써야함

태을산분정아국주군분야도

  •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66호

    태을산분정아국주군분야도

    太乙算分定我國州郡分野圖

  • 이기정李基晶│조선 1850년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 소장
    지정일 2013. 10. 30.
  • 분야分野는 고대 천문학에서 별자리를 구분하던 이름이다.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黃道 상에 위치한 항성을 28개의 별자리로 나누고 이를 28수宿라 불렀으며 지상을 다시 이 별자리의 차례와 위치로 나눈 것이다. 28수로 나눠놓은 별자리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해당 지역에 사건이 발생할 것을 미리 알려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분야도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에는 각角, 항亢, 저氐 28수의 성좌 모양을 그렸고 각 별의 도수를 아래에 기록하였다. 두 번째 구역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를 기록하였고, 세 번째 구역에는 중국춘추전국시대 13개 나라의 93개 지명을 기록하였다. 맨 아래쪽 네 번재 구역에는 우리나라의 주군을 별자리별로 나누어 표기하고 있다.
    조선시대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이 하나의 원 안에 하늘의 별들을 그려 넣은 유형으로 대표된다. 1742년(영조18년)에는 서양천문도의 영향을 받은 신법천문도가 제작되는데 이 자료는 가로로 긴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28수와 관련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분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옛 천문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 국보 제330호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大邱 慶尙監營 測雨臺

    • 높이 46, 가로·세로 37.0㎝
      조선 1770년(영조 46년)
      국립기상박물관 소장
      지정일 2020. 2. 27.
    •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770년 5월 1일, 영조는 세종조의 옛 제도를 모방하여
      측우기를 만들어 창덕궁과 경희궁 및 전국 팔도와 양도에도 설치할 것을 명하며 그 규격을 분명하게 명시하였습니다. 이 측우대는 ‘측우대, 건륭경인오월조 測雨臺, 乾隆庚寅五月造’라고 새겨져 있고, 실록의 기록과 동일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 영조의 명으로 제작한 측우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경상감영 내 선화당 뜰에 있었던 것으로 1950년 국립기상대로 옮겨져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습니다.
  • 대구 경삼감영 측우대

일상,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까지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의 소식과 근황을 전하는 수단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불과 수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간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매체는 편지가 유일했습니다. 살펴볼 자료는 시기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7세기 조선 왕실과 일반 사가에서 주고받은 한글 편지입니다. 한글편지는 발신자나 수신자가 주로 여성인 까닭에 일상의 기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장엄한 역사적 기록과는 어쩌면 조금 멀리 있지만, 오히려 당시의 다양한 생활 모습과 인물의 내밀한 감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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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첩 곤(宸翰帖 坤)
    • 보물 제1946호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

      신한첩 곤(宸翰帖 坤)

    • 정진석鄭晉錫│조선 17세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재지정일 2017. 10. 31.(2010. 1. 4.)
    • 신한宸翰은 임금의 글씨나 서찰을 의미합니다.
      이 자료는 숙휘공주(1642-1696)와 부마 정제현(1642-1662)이 왕실 사람들에게 받은 한글편지를 그들의 5대손 정진석이 1802년(순조2년)에 첩으로 묶은 것입니다.
      수록된 편지의 발신자는 효종, 현종, 숙종, 장렬왕후, 인선왕후, 명성왕후, 인현왕후로 총 35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성시기가 분명한 한글 자료로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과 17세기의 한글 사용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 국가민속문화재 제299호

      다정하고 따뜻한, 가족의 정

      진주 하씨묘 출토 한글편지

    • 조선 17세기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지정일 1993. 7. 20.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의 한 무덤에서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진주 하씨(1580~1652이후 추정)라 불리는 여성으로 남편은 현풍 곽씨 19대손 곽주(1569~1617)입니다. 발견된 유물 중에는 집안 인물들 사이에 오고간 172건의 한글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지에는 곽주와 하씨 부부를 비롯하여 그들 주변 사람들과 관련된 많은 사연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17세기 초 조선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오늘을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을 겪어내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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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하씨묘 출토 한글편지

사행使行, 48일간의 기록

平安道觀察使李龜齡書狀 【冬至使通事朴榮等, 今十一月二十五日, 出來傳言內, 十月初六日, 昭嬪 王氏誕生太子, 今十一月初六日, 頒赦于天下。 且於本朝發送天使翰林院修撰龔用卿、戶科給事中吳希孟等, 齎詔而來云。】 于政院曰: "此書狀下該司, 諸事, 依前例, 急速奉承傳。 此文臣天使, 一依辛巳年例爲之。 且天使接見時御衣, 依見樣別造事, 言于尙衣院。"

평안도 관찰사 이귀령의 서장【*】 을 정원政院에 내리고 일렀다.
"이 서장을 해사(該司)에 내려 모든 일을 전례대로 빨리 승전을 받들라. 이번에 오는 사신은 문신(文臣)이니 모두 신사년의 전례대로 하라.
또 사신을 접견할 때에 입을 어의를 견양(見樣)대로 특별히 만들라고 상의원에 말하라."
【*동지사 통사(冬至使通事) 박영 등이 11월 25일 나와서 전하기를 ‘10월 6일에 소빈 왕씨가 태자를 낳았으므로, 11월 6일에 천하에 사령(赦令)을 반포하고 본조(本朝)에도 사신을 보냈는데 한림원 수찬(翰林院修撰) 공용경과 호과 급사중(戶科給事中) 오희맹 등이 조서(詔書)를 가지고 온다.’ 하였습니다.】

중종 31년 12월 1일 임오 첫번째 기사 (1536년, 명 가정嘉靖 15년)

중종 32년인 1537년, 명明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는 중국 사신단이 조선을 방문합니다.
공융경과 오희맹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2월 20일 의주 의순관을 출발하여 안주와 평양을 거쳐 3월 10일 한양에 도착했으며, 17일까지 머문 뒤 되돌아가 4월 8일 중국 요동으로 떠났습니다.
『천사일로일기』와 『사조선록』은 당시 이들 사신단의 방문 상황에 대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록입니다.
명 사신단의 조선 방문은 16년 만에 이루어진데다 황태자 책봉이 아닌 탄생을 알리는 전례 없는 파견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신단이 환관이 아닌 문신이었기에 조선 조정에서는 영접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중국 역시 오랜만의 방문이었던 탓에 조선의 상황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으나 쉽지는 않았습니다.
두 책에는 당시의 의례를 비롯한 당시의 이러한 여러 외교적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천사일로일기
    •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85호

      중국 사신단을 맞이하며

      천사일로일기

      天使一路日記

    • 정사룡鄭士龍│조선 1537년(광해군 2년)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지정일 2019. 1. 30.
    • 중국 사신단의 조선 방문 시 그들을 맞이하던 일을 수행하던 원접사遠接使 정사룡이 1537년 명 사신단을 맞이하여 영접한 상황을 기록한 일기이다.
      사신을 맞이한 의례와 지나온 이동거리와 각 읍의 내력, 각 읍 관원들의 영송 예절과 호송 절차 등이 담겨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원접사 일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필사본의 원형을잘 유지하고 있다.
    •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86호

      조선을 다녀간 명 사신의 행적

      사조선록 상

      使朝鮮錄 上

    • 공용경龔用卿│조선 1537년(광해군 2년)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지정일 2019. 1. 30.
    • 명 사신단 대표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공용경이 중국을 출발해서 본국으로 귀환할 때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본인이 조선에서 받았던 의례와 조선의 산천, 각 지방행정구역 등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후 조선을 방문하는 명의 사신들에게 외교 지침서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 명 사신행차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 사조선록 상(使朝鮮錄 上)
  • 의순관영조도
  • 의순관영조도 ※원본 재구성

    義順館迎詔圖

  • 작자미상│1572년 경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중앙도서관 소장
  • 국가 전례와 관련된 공식적인 그림인 기록화는 중국 사신을 위한 접대용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특히 황제의 조서를 맞이하는 모습을 담은 영조도는 사신 개인의 요구에 의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그림은 1572년 명 신종神宗의 등극을 알리는 조서를 들고 조선을 방문한 명 사신단을 의순관에서 맞이하는 모습을 담은 기록화이다. 의순관은 의주성 남쪽 2리(0.8㎞) 지점에 위치해 사신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화면에서는 의주성을 향해 오는 중국 사신과 그들을 향해 공수 자세로 정렬한 원접사 일행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황의장黃儀仗을 선두로 황제의 조서를 놓은 용정龍亭을 따르는 상사와 부사의 행렬이 보인다. 비록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천사일로일기』와 『사조선록』에 기록된 사신단 영접 영조 의식을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전시실 사진

ZONE 01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2/11/02 11: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