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미군정은 1945년 9월 7일 발표한 ‘태평양 미국 육군 총사령부 포고 제1호’에 서 군정기간 동안의 공식 언어는 영어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에 영어가 꼭 필요한 언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방과 치안 유지를 위해 필요한 영어 구사자를 길러내기 위해 미군정청 국방국에서는 직접 군사 영어 학교를 운영하였고, 6·25 전쟁에 미군과 UN군이 참전하면서 영어 통역관이 더욱 필요해졌다. 영어에 대한 수요는 이렇게 폭발적으 로 증가하였지만 이를 채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우대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영어만 잘한다면 출신과 과거 행적에 상관없이 권력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영어에 외국어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게 된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영어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광복 직후의 영어 교육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갑작스러운 광복과 혼란한 사회 분위기로 준비가 부족했고, 제대로 된 정책도 세워져있지 않았다. 1946년, 미군정 주도하에 수립된 새로운 교육정책에서 이미 영어는 주당 5시간의 교수시간을 배정받게 된다. 학생들의 기초 능력을 높이기 위해 소리 내어 읽는 학습법과 사전의 사용도 장려되었다. 영어 교사의 질적 수준과 양적 부족, 학습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교재의 사용 등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이것은 영어교육의 문제라기보다 시대적 결과에 가까운 것이었다.
광복 이전에 출판된 영한사전이 우리말을 습득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사전이었던 것에 반해 이제 영어를 공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사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1946년에 류형기가 출간한 《신생영한사전》을 시작으로 휴대가 쉬운 작은 형태의 영어사전이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콘사이스(Concise)’란 단어가 영어사전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1970년대가 되어 사전 시장이 커지면서 각 출판사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전 수록 어휘와 용례 수를 늘렸다. 이에 사전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커져 중형사전으로 출판되기 시작한다. 기술의 발달은 전자사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전을 등장시켰고, 최근에는 종이사전과 전자사전 보다는 스마트폰 앱 사전을 더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후, 혼란했던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만들어진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사회를 구성하고 가꾸어나갈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과정의 수립은 사회의 운영 방향과 맞닿아 있다. 제1차 교육과정부터 정규과목이 된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다른 어느 과목보다 당대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도 학교 영어 교육은 소통이 가능한 언어로서의 영어를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1967년 첫 출간된 ‘성문종합영어’는 본고사 방식의 대학입학시험이 치러졌던 30여 년간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입시 위주의 영어공부가 주를 이루었던 1990년대까지 성문영어나 맨투맨영어 등의 교재를 사용한 영어 보충학습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입시 이상의 영어를 원했던 학생들은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학습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생생한 미국 영어를 익히기 위해 주한미군방송인 AFKN 청취하거나 사설 학원이나 강습소를 통해수준 높은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