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피난지 대구를 기록한 <태양의 거리>. 1952년의 대구, 전쟁의 혼란함 속에서도 대구 출신 민경식 감독은 영화를 찍었다. 토박이 주민들과 피난민들의 삶을 그려낸 태양의 거리. 그 시절의 생활 환경과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겨진 기록이다.
<태양의 거리> 개봉: 1952년 10월 15일 / 감독: 민경식
대구로 피난 와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돌이)은 토박이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면서 지내다가 정이 들게 된다. 불량소년들을 선도하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주인공)! 그는 할머니의 병환 때문에 나쁜 짓을 하게 된 돌이의 형을 대신해 그 가족을 돌보며 마을 학생들을 밝게 이끌어 간다.
‘태양의 거리’의 가치
6·25전쟁 중 만들어진 극영화 14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피난지 대구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서울 중심의 한국영화사 기록에서 지역영화사의 복원 가능성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영화의 주인공이 선생님으로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어 가는 교육적인 측면을 보여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태양의 거리
(자료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세계에 알려진 한국 아이들의 교육 상황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피난민 아이들! 그들을 위한 대책을 위해 외국에 적극 원조를 요청하였고, 전시의 특수 교육체계를 마련하였다.
뉴욕타임즈(1951년 6월 8일 )
“학교가 파괴되었어도 한국인들은 교육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1951년 6월 8일 맥그리거의 기고문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전쟁의 파괴로 인한 극도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교육을 재개하였다.
뉴욕타임즈(1951년 6월 22일)
“우리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1951년 6월 21일 당시의 문교부 장관 백낙준 박사는 200백만 한국학생의 교육재건을 위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포화가 끝나는 그날, 아동은 학교로 가는 날”
포화가 한국전쟁에서 끝나는 바로 그 때는 아동들이 낯익은 거리와 자기 집의 논밭을 지나서 또다시 학교로 가게 되는 그 때일 것이다. 또한 바로 그때가 우리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활동할 시간인 것이다.
매일신문 사설
“피난아동의 교육대책”
피난민 대다수가 그날그날의 생계에도 곤궁상을 맛보고 있는 차제에 관제식 등록자만을 한도로 하는 교육대책수립은 전시소국민교육 시행에 있어 완벽성을 구비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혜택! 어디까지 교육자의 광범성을 척도로 하여햐 될 것이며 차별적 교육제도가 우리 대한민국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향신문(1953년 8월 24일)
“부산·대구 등지에 있는 피난학교 존속”
환도에 따라 피난지에서 수업중이던 일부 학생들이 복귀하고 있으나 교사 부족 및 분에 넘치는 징수금으로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시당국에서는 긴급조치로 부산, 대구 등지에서개교중인 피난교는 계속 존속시킬 방침이라고 한다.